단양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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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조실록(李朝實錄)에 나타난 단양군조(丹陽郡條)
본래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인데, 신라에서 그대로 따라 내제군(奈堤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단산현(丹山縣)으로 고치어, 현종(顯宗) 九년에 원주(原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충주(忠州) 임내에 옮겨 붙였다. 합단 난리 [哈丹亂] 에 이 고을 사람들이 능히 그 적을 막았으므로, 그 공을 상주고,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숙왕(忠肅王) 五년 무진에 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로 승격시켰고, 본조(李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속장(屬莊)이 一이니, 매포(買浦)이다.
명산은 죽령(竹嶺)이다. 봄·가을에 ‘나라에서’ 향축(香祝)을 내려 제사를 지내는데, 소사(小祀)로 한다. 대천(大川)은 상진(上津)이다. 동쪽으로 영춘(永春)으로부터 와서 군의 북서쪽을 지나 청풍(?風) 지경으로 들어간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순흥(順興)에 이르기 二十四리, 서쪽으로 청풍(?風)에 이르기 十六리, 남쪽으로 예천(醴泉)에 이르기 十八리, 북쪽으로 영춘(永春)에 이르기 三十리이다.
호수(戶數)가 二백 三十五호요, 인구가 七백 二十四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二十六명이요, 선군(船軍)이 二十六명이다.
본군(本郡)의 토성(土姓)이 四이니, 우(禹)·장(張)·지(池)·이(李)요, 매포장(買浦莊)의 성이 一이니, 피(皮)요, 적성(績姓)이 二이니, 이(李)·지(池) 원주(原州) 사람이다. 인물은 단양백(丹陽伯) 충정공(忠靖公) 우현보(禹玄寶)이다. 고려 말의 사람인데,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올랐다. 계해년 지공거가 되었는데, 우리 태종이 병과(丙科)에 올라서 우현보로서 좌주를 삼고 예로써 극진히 공경하였다.
땅이 메마르고, 기후가 일찍 춥다. 간전(墾田)이 一천 一백 六十九결이요, 논이 一백 十二결이다. 토의(土宜)는 뽕나무·산뽕나무·칠(漆)·닥나무·가래나무·잣나무·삼 [麻] ·콩·조 [粟] 이며, 토공(土貢)은 꿀·밀 [黃蠟] ·범가죽·삵가죽·지초·느타리 [眞茸] ·석이 [石茸] ·잡깃 족제비털 [黃毛] ·종이요, 약재(藥材)는 복령·승검초 뿌리 [當歸] ·복신 [茯神] ·대왕풀 [白?] ·인심·자단향(紫檀香)·북나무진 [安息春] 모향(茅香)·곰쓸개 [熊膽] 이요, 토산(土産)은 산겨자 [山芥] ·송이 [松茸] ·신감초(辛甘草)·먹 [墨] 이다. 먹은 가장 좋아서 단산오옥(丹山烏玉)이라 한다.
가은암산석성(加隱巖山石城)이 군의 서쪽 十三리에 있고, 둘레가 四백 十九보이며 ‘지세’가 험하고, 안에 샘 三이 있는데, 가뭄을 만나면 마르며, 또 군창(軍倉)이 있다. 역이 二이니, 영천(靈泉) 세속에서 영천(令泉)이라 한다. 장림(長林)이요, 봉화가 一곳이니 소이산(所伊山)이다. 동쪽으로 죽령산(竹嶺山)에, 서쪽으로 청풍(?風) 오현(五峴)에 응한다.
월경처(越境處)는 순흥(順興) 임내의 하곡소(下谷所)가 죽령(竹嶺)을 넘어 군(郡)의 동촌(東村) 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