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선조(인물)
- 덕(德)과 업적(業績) -
1. 시중공(侍中公) 휘(諱 : 이름) 중대(仲大)
관(官)은 시중(侍中 : 영의정) 상령공(上令 公)이라고도 호칭(呼稱)함
고려(高麗) 고종(高宗) 十六年(一二二六)에 향공진사(鄕貢進士)로서 문과(文科)에 발탁되어 관(官)이 문하시중(門下侍中 : 영의정)에 이르시었다. 이분 이전의 휘(諱) 현(玄), 신(臣), 인가(仁可), 잉순(仍順), 경절(慶節)의 五세(五世)는 숭정보(崇禎譜 : 일명(一名) 고부보(古阜譜) 一六四二년 발간(發刊))에 처음으로 기재(記載)하였는데 연대(年代)가 아득히 멀고 관직(官職)과 묘지(墓地)가 지금까지 확실(確實)치 않다. 그러나 휘(諱) 중대(仲大)에 이르러 단양(丹陽)을 본관(本貫)으로 하고 관직(官職)이 당시(當時)에 뚜렷하여 이름을 후세(後世)에 길이 남기시었으므로 이때부터 세대(世代)의 원파(源派)를 명확(明確)하게 파악(把握)하게 되었다. 공(公)이 고려중엽(高麗中葉) 후(後)의 명신(名臣)으로 묘(墓)는 단양군(丹陽郡) 적성면(赤城面) 애곡리(艾谷里)에 있고 단양(丹陽)사람들이 그 묘(墓)를 높여 우령공묘(禹令公墓)라 부르니 나무꾼이 감(敢)히 가까이 못갈 뿐 아니라 그 지방(地方)에 유사시(有事時)에는 선생(先生)을 제사 모셔 신명(神明)에게 축을 비니 공(公)의 유덕(遺德)에 감복(感服)하는 바가 실(實)로 깊음을 가히 알 수 있다.
영춘(永春 : 단양군(丹陽郡)에 있음) 북(北)쪽 벽(壁)에 공(公)이 지으신 시(詩)가 있다.
작등영월협(昨登寧越峽) 금하영성탄(今下永城灘)
어제는 영월협곡에 오르더니 오늘은 영성(永城)여울 밑에 있어라
일수결천리(一水決千里) 편주과만산(片舟過萬山)
천리강(千里江)물이 단숨에 흐르니 조각배는 이미 만산(萬山)을 지나누나
2. 좌대언공(左代言公) 휘(諱) 칭(偁)
〔좌대언(左代言)은 좌승지(左承旨)〕
고려(高麗) 충숙왕조(忠肅王朝)에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관(官)이 좌대언(左代言)에 이르시다. 요승(妖僧) 경린(景麟)과 경총(景聰)이 왕(王)의 총애를 받아 대선사(大禪師)를 수명(授命)하니 공(公)이 청백(清白)하고 곧은 절개(節介)로 이조은(李朝隱), 윤기(尹頎)와 함께 그들에게 인사서명(人事署名)을 거절(拒絶)함에 왕(王)이 노(怒)하여 장지(杖之)하려하자 그 잘못된 것을 하의하시니 왕(王)이 화를 풀었다.
3. 문희공(文僖公, 八세) 휘(諱)는 탁(倬)
〔자(字)는 천장(天章) 관(官)은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호(號)는 역동 (易東), 백운당(白雲堂)〕